한 남자가 무화과나무 앞에 서있다. 그는 예루살렘을 거쳐 베다니 마을을 지나다가 허기를 느꼈다. 손바닥만 한 무화과나무 잎사귀 사이로 열매를 찾았다.

그러나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없었다. 당연했다. 때는 봄이었고 열매가 맺히기엔 일렀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열매가 있을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왜 그는 이 시기에 무화과를 바랐을까?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이어진 행동이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대부분의 나무가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무화과나무도 마찬가지다. 이를 잘 알면서도 열매를 구했고, 또 저주했다.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 내용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한 인물은 이스라엘에 오신 구원자,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

무화과나무 저주
저주받은 무화과나무 (자메 티소트 作, 브루클린 박물관)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의 이유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이유는 성경의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뜻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무화과나무를 빗대어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를 예언한 부분이 종종 있다(예레미야 24:3~5).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저주하셨을까. 이는 그들이 어떻게 구원자를 대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찾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신 예수님. 유대인들에게 그의 가르침은 생소했고 또 난해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편파적인 생각에 가로막혀 메시아를 믿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떻게 자칭 하나님이라 하느냐며 예수님을 비난하기까지 했다(요한복음 10:33).

결국 이스라엘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을 저주했다. 아니, 사실 저주를 부른 건 이스라엘 자신들이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마태복음 27:25)

무화과나무 저주 예수님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 (미할리 문가치 作)

이스라엘에 닥친 위기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이스라엘의 멸망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닥쳐오고 있었다.

AD 66년,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다

로마를 향한 유대인의 반란은 사실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로마의 황제들은 스스로를 신이라 칭했고, 식민 통치를 받던 유대인들에게도 자신을 숭배하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오직 여호와만을 신봉하던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황제를 경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AD 66년 여름, 억압받던 유대인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로마와 그에 빌붙어 권력을 행사하던 대제사장들을 향해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던 열심당을 중심으로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반란 초기에 로마는 나라 안팎의 여러 문제들로 인해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반란을 진압할 사령관으로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파견한 때는 AD 67년 봄이었다. 비록 초기 대응은 늦었지만, 진압이 시작되자 북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주변 지역들은 무서운 속도로 정복되어갔다. 베스파시아누스가 이끄는 6만 명 규모의 군대에게 열심당원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로마 군대는 파죽지세로 남쪽을 향했다. 여리고가 함락되고 벧엘이 무너졌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생기기 전까지는.

AD 68년, 네로의 자살

로마 군대가 철수하다

로마는 네로 황제의 자살로 혼란에 빠졌다. 이 시기를 틈타 권좌에 오르려는 군인들의 쿠데타까지 겹쳤다. 네로가 자살한 68년 6월부터 1년이 약간 넘는 기간 동안 황제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이민족의 반란 진압이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맹렬하던 로마 군대가 별안간 철수하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믿었다. 세계 최강국이던 로마를 물리쳤다는 자부심에 예루살렘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는 유대인들의 착각이었으며, 누가복음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일 뿐이었다.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누가복음 21:20~22)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성내에서 나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군의 퇴각은 절호의 기회였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요단 강 건너에 위치한 펠라라는 작은 성으로 도피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믿었던 것이다.

무화과나무 저주 이스라엘 멸망
동요르단에 위치했던 펠라 성의 유적지. 예수님의 예언을 믿었던 이들은 로마 군대가 철수하자 모두 이 성으로 도피했다.

AD 69년 7월,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의 내란을 차츰 정리해갔다. 로마가 혼란스럽던 그 기간은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의 시간이었다. 이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아들 티투스에게 예루살렘 정벌을 재차 지시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성서 그리고 역사, 장-피에르 이즈부츠